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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의회 국가상징

소개

유래

양포동 유래

금전동(金田洞)

임진왜란 시 강릉 유씨가 난을 피해 터를 잡은 곳으로 천생산의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산세의 곡(谷)이라는 유래에서 생긴 가실(佳室) 마을과 칠곡 가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과 천생산에서 흐르는 냇물이 합하여 이루어진 천(川)으로 물이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와래(臥川)마을, 웃마, 아랫마, 새마, 교회마을의 자연부락이 있었음.

양호동(陽湖洞)

양씨가 살았다하여 양씨마을이라는 설도 있으며 석양빛이 강물에 비춰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에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유래되고 있으며 현재 시룻골, 양말, 빈숙골의 자연부락이 있음.

거의동(居依洞)

원래는 거의곡(居義谷)이라 하였으나 일제 때 행정상 정리를 할 때 빈촌으로 일본에 의지해서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바꾼 것이 오늘의 법정동명인 거의가 되었다고 전함.

옥계동(玉溪洞)

한천 앞 버드나무가 울창하여 동구 밖을 장식한 아늑한 마을로 한천물이 맑고 조약돌이 구슬같이 깨끗하여 아름답다는 연유에서 불린 이름이며 마을 앞 국도변에 안경같이 생긴 쌍웅덩이가 있었는데 추운 겨울에도 김이 나는 온수로 얼음이 얼지 않았으며 따뜻한 온수가 나는 곳이라 하여 불린 온수골(溫水谷)과 반월당 김종효가 이주하여 반월당 서당을 열어 젊은 선비들이 모여 들어와 문사(文士)가 숲을 이루었다는 문임(文林) 즉 무이미의 자연부락으로 존재하다 현재의 법정동명이 되었으며 현재는 대부분이 아파트 건설, 택지 개발, 공단 부지 편입 등으로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움.

구포동(龜浦洞)

갈대가 무성하여 아름다운 마을(가락골)이었으며 갈대숲 늪에는 거북이 살았다 하여 구포동이라 불렸고 약 360년 전 전주이씨가 이주하고 그 후 밀양박씨 인동장씨 등이 이주해 옴으로 형성된 마을로 한자로 명산에 의해 유래된 솔뫼마을이 있었고 현재는 공단이 형성되어 있음.

페이지 담당
최종 수정일 :
202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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