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옥성면 유래
초곡리
조선 중종 28년 초적원(草積院)이 있던 곳이라 하여 초곡이라 부르며 본래 선산군 주아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초곡동이라 하고 옥성면에 편입되었다.
농소리
조선 초기에 마을이 개척되었으며 옛말에 선산 고을 제일은 농소리 어울목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자연 수로의 수질이 좋아 농사가 잘 되는데서 나온 말이다. 본래 주아면 지역으로 조선시대 농막이 있다 해서 농소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농소동으로 옥성면에 편입되었다.
주아리
조선 태종 원년 임씨 집안에 9형제가 살았다 하여 9제동으로 불리어 왔으나 그 후 약관 소년이 주서(고려 시대 관직)에 급제하였다 하여 주아동이라 이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이 마을이 점령당하여 주민 학살이 많았다고 한다.
구봉리
노봉산 밑에 마을이 자리 잡았다 하여 봉촌이라고도 한다.
옥관리
고려 말에 옥씨 성(玉氏 姓)을 가진 자가 정착하여 도기(陶器)를 구워 번창한 집단 씨족을 이루고 살았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옥씨 성이 한 명도 없으며 낙동강변을 따라 산재되어 있는 고분은 부락 족장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 옥관 옥간은 주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옥성면으로 편입되었다.
산촌리
고려 성종 2년(986년) 선인(仙人)이 살았다 하여 선동(仙洞)이라고도 하며 현재 영양 남씨(英陽 南氏)들의 집성촌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여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라 산촌(山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태봉리
고려 때 연안 차씨가 정착하였다 하나 미상이며 옛날 어느 임금님이 왕자의 태를 붙은 곳이라 하여 태봉(胎峰)이라 했는데 그후 태봉(台峰)이라 하였다.
대원리
조선 초기에 촌락을 형성하였다 하나 연대는 미상이며 죽현원(竹峴院, 국립 여관)이 있었다. 당초는 죽원리였으나 어감상 좋지 않다는 주민들의 진정에 따라 1990년 1월 6일 선산군 조례 제1247호에 의거 대원리로 변경하였다.
덕촌리
다항지(多項池)가 있고, 골짜기가 많은 데서 유래한 하목 고개와 영남 상인들이 이곳을 지나 북방 지방으로 장사를 다닐 때 길목에 2평 남짓한 돌이 있어 휴식처가 된 너븐돌로 불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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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수정일 :
- 2024-07-30